[파이프라인] - 땅속을 가로지르는 한탕의 질주, 한국식 케이퍼 누아르의 도전
1. 영화 정보
- 감독: 유하
- 장르: 범죄, 액션, 드라마
- 개봉일: 2021년 5월 26일
- 러닝타임: 108분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출연진: 서인국, 이수혁, 유승목, 태항호, 배다빈, 정재광
2021년 5월, 한국 영화계에 조금은 특별한 소재가 등장했다. 바로 정경호, 서인국, 이수혁, 유승목, 태항호, 배다빈이 주연을 맡은 범죄 오락 영화 [파이프라인]이다. 제목만 보면 다큐멘터리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도유’라는 생소한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통 케이퍼 무비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보지 못한 ‘송유관 절도범’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탕을 꿈꾸는 인간들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의외의 코믹함이 뒤섞여 있는 범죄 오락물이다.
2. 줄거리
– 송유관 아래, 위험한 한탕의 세계
[파이프라인]은 대한민국 지하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송유관. 그곳은 국가의 주요 에너지 혈관이지만, 동시에 ‘기름을 훔치는 놈들’에겐 금 맥과도 같은 곳이다. 이 위험천만한 범죄의 중심에 천재 도유 기술자 ‘핀돌이’(서인국)가 있다. 용접과 지하 작업에 있어선 전국 최고 실력자 지만, 언제나 돈 앞에서는 냉정한 현실주의자. 어느 날 그는 재벌 2세이자 야심가인 **‘건우’(이수혁)**에게 제안을 받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연결된 송유관 한가운데를 뚫고, 한 달간 기름을 빼돌리는 초대형 범죄 프로젝트. 성공만 하면 수십억의 수익이 보장된다.
핀돌이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건우가 모아놓은 특수 인력들과 함께 작업에 착수한다. 잔머리 좋고 수다스러운 ‘접새’(태항호), 거친 성격의 장비 전문가 ‘나과장’(유승목), 감시와 통제를 담당하는 ‘카운터’(배다빈), 말 없는 작업자 ‘기익사’(정재광)까지 각기 다른 배경과 성격의 사람들이 모인다.
이들의 목표는 송유관 중간 지점을 은밀히 뚫고, 일정량의 기름을 지속적으로 빼내 정제·유통시키는 것. 하지만 작업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다. 거대한 땅 밑 구조와 높은 압력, 노후 된 설비 등 기술적인 난관은 물론, 팀 내부의 갈등과 건우의 이기적인 태도까지 더해져 분위기는 점점 살벌해진다.
게다가 경찰은 송유관 압력 이상을 감지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이 와중에 핀돌이는 건우가 작업이 끝나는 대로 팀원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신이 배신을 부르고, 이들은 점점 더 깊은 위험 속으로 빠져든다.
작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판의 끝엔 누가 웃게 될까?
3. 주요 인물
주요 인물과 배우들의 활약
- 서인국 (핀돌이 역)
이 영화의 진짜 중심. 범죄자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복합적인 인물을 유쾌하게 소화한다. 평소 서늘한 매력을 가진 배우지만, 이번 작품에선 유머와 냉소, 진심을 넘나드는 연기로 색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 이수혁 (건우 역)
범죄를 주도하는 재벌 2세. 잘생긴 외모에 차가운 카리스마까지 갖췄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사 하나 빠진 느낌이 있다. 악역이지만 어딘가 허술한 인물이기에 영화의 텐션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재미를 만든다.
- 유승목, 태항호, 배다빈
이른바 '범죄 드림팀'. 각자 개성 있는 캐릭터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인다. 특히 태항호는 특유의 짠내나는 유머와 인간적인 연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4. 영화의 미덕
– 독특한 설정과 장르적 시도
[파이프라인]의 가장 큰 장점은 소재 자체에 있다. 송유관을 훔친다? 단순한 강도나 사기극이 아닌, 지하에서 진행되는 공학적 범죄라는 신선함이 있다. 관객은 마치 "지하 케이퍼 공사 현장"에 함께 들어가 있는 기분을 느낀다. 땅을 파고, 용접을 하고, 압력을 계산하며 도유을 감행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또한, 영화는 무겁고 어두운 범죄 물이 아닌, 유쾌한 팀플레이 영화를 지향한다. 중간중간 터지는 유머와 각 인물들의 인간적인 매력은 [도둑들]이나 [극한직업]의 계보를 잇는 케이퍼 무비의 형식을 따른다.
아쉬운 점 – 기름은 많은데, 엔진이 약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파이프라인]은 ‘기획은 좋지만, 완성도는 아쉽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스토리는 신선하지만 전개가 다소 늘어지며, 긴장감도 꾸준히 유지되지 않는다. 캐릭터 간의 갈등은 예상 가능한 선에서만 그쳐버리고, 반전도 약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개성과 연기는 좋지만, 그걸 받쳐주는 각본이 평이 하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감독 유하는 과거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등 한국 누아르 장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진중함보다는 오락성과 유머에 초점을 맞췄고, 결과적으로는 약간의 어중간 함이 느껴진다.
5. 총평
– 땅 밑 세계를 파헤친 색다른 시도
[파이프라인]은 분명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장르와 설정을 시도한 작품이다. 송유관이라는 생소한 공간, 도유라는 신선한 범죄 설정, 그리고 매력적인 배우진까지.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신선한 기획이 스토리로 깊게 연결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퍼 무비 특유의 ‘한탕의 쾌감’을 어느 정도 선사하며, 한국형 범죄 오락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임은 분명하다.
완성도가 다소 아쉽긴 해도,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를 찾는 관객에게는 적당한 선택일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기름을 훔치는 이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갈증’이다.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닌,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이자 도전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