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리뷰 – “죽은 이들과의 재회는 위로인가, 망각인가?”
1.개요
제목: 원더랜드 (Wonderland)
감독: 김태용
출연: 탕웨이, 박보검, 배수지, 정유미, 최우식
장르: SF 드라마, 휴먼
러닝타임: 115분
개봉일: 2024년 제작: 용필름
감독 김태용이 10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이자, 기술과 감성의 경계를 섬세하게 조율한 휴먼 SF 드라마. 영화는 “죽은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도발적이고도 따뜻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누군가를 잃은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설정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이 일렁일 것이다. 영화 [원더랜드] 는 ‘가상 현실’을 통해 죽은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인류의 욕망을 진지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들여다본다.
2. 요약
가까운 미래, 사람들은 더 이상 완전한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잃더라도 [원더랜드] 라는 서비스를 통해 그 사람과 대화하고, 웃고, 함께 밥을 먹는 게 가능해졌다. [원더랜드] 는 인공지능이 죽은 사람의 기억, 외모, 말투, 행동을 학습해 만들어낸 ‘가상 존재’를 현실처럼 구현해주는 가상 세계다. 정인(배수지)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연인 태주(박보검)를 보내지 못하고, 그를 원더랜드 안에서 복원한다. 처음엔 어색하고 믿기지 않았지만, 점점 정인은 원더랜드 속 태주와의 만남에 몰입하게 된다. 그는 진짜 태주처럼 웃고, 말하고, 기억을 공유한다. 그와 다시 시간을 보내는 순간마다, 정인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간다. 한편, 중국에서 온 엄마 바이리(탕웨이)는 어린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그녀는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딸을 위해 남편을 원더랜드에 복원한다. 하지만 점점 더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딸을 보며, 바이리는 혼란에 빠진다. 정말 이 선택이 옳은 걸까? 아이에게 진짜 아버지를 대신한 가짜 존재를 보여줘도 되는 걸까? 이 모든 사용자들을 관리하는 시스템 관리자 혜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는 사용자의 감정이 원더랜드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도록 ‘정책’을 운용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이 시스템이 사람에게 주는 위안과 위험성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3. 메인 인물
정인 (배수지): 외면은 강하지만 내면은 무너져가는 여성.
식물인간이 된 연인 태주를 가상으로 되살리며 복잡한 감정을 마주한다.
태주 (박보검): 원래는 따뜻하고 자상한 남자였던 정인의 연인.
원더랜드 안에서 살아 숨 쉬는 ‘AI 태주’는 정인의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다.
바이리 (탕웨이): 딸을 위해 죽은 남편을 다시 불러낸 중국인 여성.
아이의 행복과 진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혜리 (정유미): 감정적으로는 냉철하지만 점차 인간적인 판단에 흔들리는 시스템 관리자.
원더랜드의 윤리적 균형을 상징하는 존재.
현수 (최우식): 따뜻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관리자.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혜리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4. 평론
- “기억이 남은 자의 몫이라면, 원더랜드는 그 몫을 빼앗는가?”
[원더랜드] 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법을 안다. 그것도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이 영화는 갑작스럽게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억지로 눈물을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조용히 펼쳐 보이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가요?”라고 묻는다. 인간은 늘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별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이 영화는 그 ‘견딤’이라는 과정에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리움이 너무 크다면, 가짜라도 괜찮은가? 아니, 진짜 같은 가짜라면, 그게 더 행복한 삶일까? 배수지는 감정을 누르면서도 무너지는 연기를 절제력 있게 보여준다. 그녀의 눈빛만으로도 ‘사랑’과 ‘상실’이 어떻게 뒤엉킬 수 있는지 충분히 설명된다. 박보검은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을 인공적으로 구현해야 했기에 더욱 어려운 연기를 요했지만, 특유의 순수함과 온기로 완벽하게 캐릭터를 소화했다. 탕웨이의 연기는 극에 묵직함을 더한다. 그녀는 어떤 설명도 없이, 단지 얼굴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를 위한 선택이 ‘거짓된 행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의 갈등은 더 현실적이다. 감독 김태용은 감정을 조율하는 데 있어 놀라운 섬세함을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줄 감정의 복제를 무조건 이상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숨어 있는 윤리적 문제, 현실과 가상의 경계, 인간 정체성의 해체 가능성까지 신중히 비춘다.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짜'와 '거짓'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는가, 아니면 그 추억을 소비하는가?"
[원더랜드] 는 판타지처럼 시작하지만, 결국 가장 현실적인 질문으로 끝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상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인가, 망각의 시작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집착일까?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감정의 깊이를 선택한다.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를, 그리고 기억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를 말없이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인이 현실 속 태주의 병실을 마주할 때, 관객의 마음도 함께 무너진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가장 아픈 사랑은, 떠나보낼 줄 아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