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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서 담긴 [쌍갑포차] (한 풀이, 감정 치유, 전통)

by richm300 2025. 5. 21.

2020년 JTBC 드라마 ‘쌍갑포차’는 천막 하나, 막걸리 한 사발로 얽힌 사연을 풀어주며 한을 달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전통 설화·현대 사회·판타지 치유물이 촘촘히 엮여 세대의 고단함을 어루만지죠.

목          차

                                                             1.  한풀이와 전통 설화의 재해석

                                                             2.  감정 치유 공간으로서의 포장마차

                                                             3.  한국적 정서와 캐릭터가 건네는 위로

[쌍갑포차]드라마 포스터

1.  한풀이와 전통 설화의 재해석

‘쌍갑포차’의 핵심은 한풀이라는 오래된 정서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속 설화는 원혼이나 억울한 사연을 달래는 굿판을 통해 공동체 균형을 되찾았습니다. 드라마는 이 전통 의식을 현대적으로 변주합니다. 영업시간이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인 이동식 포장마차는 과거 한국 사회에서 ‘품삯 다 끝난 뒤 마음을 풀어내는 자리’였죠. 극 중 월주가 차리는 술상에는 막걸리·두부김치·꽁치구이 등 서민 음식을 올려놓는데, 이는 한풀이 의례에서 사용되던 제수(祭需)의 친근한 재해석입니다. 한을 품은 손님은 한 모금 술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 잠든 사이 월주·귀반장·한강배 삼인방이 ‘꿈문’으로 들어가 깊은 무의식을 건드립니다. 이 장치는 무당이 굿 중에 신내림으로 사연을 듣는 방식을 연상시키지만, 드라마는 CG와 슬랩스틱을 곁들여 경쾌하게 풀어냈습니다. 전통을 무겁게 소환하지 않고 ‘호러·로맨스·코미디’ 장르를 오가며 새 감각으로 소화한 것이 강점이죠. 특히 조선 시대부터 이어 온 저승 세계관을 현대 배경에 이식한 방식이 돋보입니다. 월주 집 안 대대로 내려온 초상화, 신선 노릇을 하는 염라국 판관, 그리고 저승 인력사무소 같은 디테일은 ‘전통+모던’ 조합을 시각화했습니다. 이렇듯 한풀이 의례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매 회차 새로운 에피소드로 변주해 전통 설화에 낯선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했습니다.

2.  감정 치유 공간으로서의 포장마차

포장마차는 밤이 돼서야 열리는 임시적 공간입니다. 드라마 속 쌍갑포차의 천막은 노란 조명 아래 우중충한 도시 조명을 끌어안아, 손님을 현실에서 잠시 떼어놓는 역할을 하죠. 여기서 감정 치유가 시작됩니다. ‘쌍갑’은 ‘쌍방 갑질 금지’라는 의미로, 손님과 사장 모두 평등한 관계임을 선언하고 시작하게 됩니다. 월주가 처음 손님에게 “오늘 힘들었죠?”라고 물을 때, 술잔은 상담실의 의자보다 부드럽고 상담을 잘 풀리기게 합니다. 한강배가 건네는 새콤달콤한 수정과, 귀반장이 내려주는 쓴 약차는 시청자에게 ‘맛’을 매개로 정서를 체감시키죠. 에피소드마다 손님 유형도 다양합니다. 대기업 취준생·웨딩플래너·은퇴 경찰·독거노인까지, 현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관계 스트레스가 테이블 위에 올라옵니다. 꿈에서 자신의 트라우마와 직면한 손님들은 울고 웃으며 ‘한(恨)’을 덜어내는데, 이는 상담 심리학의 노출 요법을 연상시킵니다. 흥미로운 점은 치유가 단순히 문제 해결이 아니라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의 존재 확인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월주의 마지막 미션을 돕기 위해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포차를 지키는 14회 장면은, 포장마차가 공동체 회복의 미시적 모델임을 보여주죠. 공간적 한계가 오히려 정서를 밀도 있게 압축하며, 시청자의 공감대를 폭발시켰습니다.

3.  한국적 정서와 캐릭터가 건네는 위로

‘쌍갑포차’는 캐릭터 드라마입니다. 월주는 500년 전 억울한 죽음 이후 10만 명의 한을 풀어야 극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언어로 손님을 찌르지만, 술잔 후 딱딱한 어깨를 토닥이는 동작에서 따뜻함이 묻어나죠. 이 ‘뾰족함 속 온기’는 한국적 정서가 지닌 이중성—거칠어 보이지만 속정 깊은—을 체현합니다. 한강배는 영혼을 접촉할 수 있는 희귀 체질 덕분에 월주를 돕게 되는데, 그의 순수함은 ‘가장 평범한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실업·비정규직·가족 부양 등 현실 고민을 짊어진 인물이 저승과 인간 세계를 오가며 성장해, 시청자 또한 자신의 불안을 투영하게 되죠. 귀반장은 저승 차사였다가 벌 받아 포차 운영자로 전락한 인물로, 때때로 무심한 농담을 던지지만 깊은 책임감을 보여줍니다. 이 삼각 구도는 ‘가족을 닮은 공동체’를 구현합니다. 또한 드라마는 한국어 특유의 높임말·반말 변주를 통해 관계의 거리를 섬세하게 조절합니다. 월주가 손님을 “OO 씨”라 부르다 “OO야”로 전환하는 순간,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감각을 관객도 동시에 체험합니다. OST 역시 국악 장단과 재즈 세션을 믹스해 전통과 현대 위로를 함께 전합니다. 최종회 엔딩에서는 ‘한(恨)은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주제를 조용히 내립니다. 이는 한국적 감정 구조, 즉 ‘아픔을 품어야 더 큰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통찰을 담고 있으며, 시청자에게 삶의 균열을 껴안고 나아갈 용기를 건넵니다.

쌍갑포차는 억울함을 달래는 한풀이 의식, 포장마차라는 서민적 공간, 따뜻한 캐릭터를 엮어 한국 정서를 총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매서운 현실 끝에 놓인 소박한 술상은 여전히 우리 마음 한편을 비춰 주며,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라고 다정히 인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