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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얼마나 닮았을까? 펜트하우스 vs 현실

by richm300 2025. 5. 18.

2020년을 뒤흔든 드라마 ‘펜트하우스’. 화려하고 자극적인 서사 속에 과연 얼마나 현실이 반영되어 있었을까요? 허구와 현실 사이, 그 얇은 경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목          차

                                                 1.  펜트하우스 속 부동산 신화, 현실인가 허상인가?

                                                 2.  아이들의 경쟁과 부모의 복수, 그 감정의 진폭

                                                 3.  극단의 감정선, 현실 속 우리의 감정과 얼마나 닮았을까?

[펜트하우스]드라마 포스터

1.  펜트하우스 속 부동산 신화, 현실인가 허상인가?

2020년, 모두가 ‘집’이라는 단어에 예민했던 그때, 펜트하우스는 그런 시대 감정을 정확히 찔러냈습니다. 드라마 속 100층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헤라팰리스’는 그 자체로 욕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욕망이 단지 드라마적인 상상 속 공간일까요? 사실 아닙니다. 실제 강남권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도 비슷한 서열 구분, 층간 경쟁, 커뮤니티 내 암묵적인 계급이 존재한다는 건 이미 여러 기사와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몇 층에 살고 있는지가 곧 그들의 ‘인생 레벨’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동했죠. 현실에서도 비슷합니다. 몇 평, 어느 동, 어느 라인이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만들어지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물론 드라마는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복층에 산다고 우월감을 느끼고, 하층 거주자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엘리베이터 타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계급을 나누는 설정은 현실보다 훨씬 더 과장되어 있죠. 하지만 그 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미 현실이 그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자녀의 입시와 연결된 부동산 접근성, 학군, 교육열도 드라마 속에서 날카롭게 그려졌습니다. 집값은 곧 자산이 되고, 자산은 곧 계급이 되며, 그 계급은 자녀의 미래까지도 좌우하는 구조.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뉴스 헤드라인이기도 합니다. 펜트하우스는 이 구조를 ‘극단적으로 데포르메’했지만, 그 데포르메가 무섭도록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는 점이 오히려 더 섬찟했죠.

2.  아이들의 경쟁과 부모의 복수, 그 감정의 진폭

‘펜트하우스’는 단지 어른들의 싸움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입시 경쟁, 친구를 경쟁자로 보는 시선, 그리고 그 아이들을 앞세워 서로에게 복수하는 부모들. 이런 구조는 처음엔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몇 회만 지나면 시청자는 이상하게 빠져듭니다. 왜냐하면, 익숙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강남권 사교육 현장에서는, 친구의 성적을 몰래 확인해 부모에게 알려주는 사례도 있고, 내신 경쟁으로 친구 간의 관계가 끊어지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드라마 속 아이들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면, 어쩌면 현실을 너무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무엇보다 펜트하우스의 아이들은 늘 ‘내 부모가 날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속에 안고 살아갑니다. 부모의 집착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부모의 욕망을 위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 이런 장면은 우리 주변의 입시생 가정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과도한 학원 스케줄, 성적을 성격처럼 여기는 기준, 그리고 공부 외의 감정을 표현할 틈조차 주지 않는 구조. 펜트하우스는 이를 극단적인 복수극으로 풀어냈지만, 그 감정선은 현실의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도 분명히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수의 방식. 진짜 칼이나 총은 등장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도 ‘소문’과 ‘평판’만으로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벌어지는 따돌림, 입시 커뮤니티에서의 평가, 사교육 시장에서의 ‘소문 장사’는 펜트하우스가 그리는 세계와 이상하리만큼 겹쳐지죠. 정서적으로는 충분히 폭력적인 세계인 겁니다.

3.  극단의 감정선, 현실 속 우리의 감정과 얼마나 닮았을까?

펜트하우스가 ‘막장 드라마’로 분류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감정의 과잉입니다. 눈물, 소리 지름, 절규, 그리고 반전. 그런데 이 모든 장면이 어쩐지 ‘카타르시스’를 준단 말이에요. 왜일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절제된 감정에 익숙합니다. 울고 싶어도 참고, 분노가 차올라도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해 삼키죠. 펜트하우스는 그런 억눌린 감정들을 대신 폭발시켜 주는 대리 충족의 공간이었던 겁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 배신과 복수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은 과장되었지만, 우리가 억눌러온 감정을 해소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폭발하지 못하니까요. 가정 내 갈등도, 직장에서의 불합리도, 이웃과의 대립도 펜트하우스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감정의 결은 비슷합니다. 우리가 공감한 건 이야기의 구조보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 굴곡은, 종종 우리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을 믿고 싶지만 두렵고, 성공하고 싶지만 양심이 발목을 잡고, 복수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상처받을 걸 아니까 망설이게 되는 그 복잡한 감정들. 펜트하우스는 그것을 한 편의 감정 오케스트라처럼 휘몰아치며 보여줬고, 우리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묘한 위안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펜트하우스는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오히려 너무 현실과 닮았기에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 뒤에 숨겨진 진짜 현실의 조각들. 우리는 그 드라마를 통해 거울처럼 우리 사회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