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조금은 촌스럽고 그래서 더 애틋했던 그 시절의 수사드라마 한 편이 있었습니다. 청춘과 수사의 교차점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성장해 나갔던 드라마, 바로 <너희들은 포위됐다>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해결물이 아니었고, 인물 간의 감정선과 과거의 상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아냈죠.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감성은 더 뚜렷해졌고, 다시 돌아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목 차
1. 다시 돌아본 2014년,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매력
2. 엉성한데 그래서 더 정이 간다 – 복고 감성의 미학
3. 수사극, 청춘극, 성장극이 만날 수 있었던 이유
1. 다시 돌아본 2014년,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매력
사실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처음 본 건 제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경찰 드라마’라고 해서 처음엔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예상했었는데요. 막상 첫 회를 보고 나니, 이건 무겁기보다 엉뚱하고 따뜻하며, 무엇보다도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였습니다. 캐릭터들이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면서도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2014년이라는 시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OTT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전이었고, 일주일에 두 번 본방사수를 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였던 시기였죠. 드라마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설렘으로 가득하던 그때,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딱 그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이승기, 차승원, 고아라, 안재현 등 당시에도 이미 인지도 있던 배우들이었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이 라인업이 한 작품에 있었다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화려한 조합이었습니다. 특히 이승기가 연기한 ‘은대구’는 툭툭 내뱉는 말투, 차가운 눈빛, 반항적인 태도 속에 숨겨진 트라우마와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특유의 묵직한 감정선이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줬죠. 반대로 고아라가 연기한 ‘어수선’은 밝고 엉뚱한 매력으로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이었는데요, 처음엔 “이 둘이 어울릴까?” 싶었던 조합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예상 밖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며 큰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감성'이 있었습니다. 사건만을 해결하는 수사극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였어요. 각 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었고, 수사라는 외피 속에 그런 인간적인 서사를 조심스럽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고, 웃기지만 그 웃음 뒤에 짠한 여운이 남았고, 유쾌하지만 어떤 순간엔 가슴이 찡해지는 장면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 감정의 교차점에서 이 드라마는 진짜 힘을 발휘했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보면,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2. 엉성한데 그래서 더 정이 간다 – 복고 감성의 미학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다소 올드한 연출이 많습니다. 카메라 무빙도 아주 정직하고, 전환도 느린 편이며, BGM도 가끔은 “아, 이건 진짜 2010년대 감성이다” 싶은 장면들이 분명히 존재하죠. 요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이펙트나 극적인 사운드 연출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요, 오히려 그게 이상하게 더 정이 가는 겁니다. 지금처럼 과하게 세련되고 속도감 있는 화면 대신, 어딘가 덜 다듬어진 듯한 장면들에서 진심이 묻어 나오거든요. 이건 단순히 ‘향수’라는 단어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드라마들은 지금보다 여유가 있었고, 감정을 천천히 쌓아가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인물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 멈칫하는 침묵까지도 이야기의 일부로 존중받던 시기였죠. 급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을 따라갈 수 있었던 구조.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바로 그런 감성적 흐름의 정중앙에 있던 작품입니다. 경찰물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따뜻했고, 청춘물이라고 하기엔 또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경찰 성장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적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이 작품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또 드라마 곳곳에 배치된 유머 코드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억지로 웃기려는 장면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유쾌함이 있었죠. 차승원이 연기한 ‘서판석 반장’은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과장된 인물이었지만, 그 안에 인간적인 진심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후배들을 윽박지르고, 툭툭 내뱉는 말투 속에서도 따뜻함이 스며 있었고, 그 때문에 오히려 무게중심을 제대로 잡아주는 핵심 캐릭터가 되었죠. 그의 존재 덕분에 팀 전체의 서사에 온기가 감돌았고, 단순히 리더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요즘 드라마들을 보면 장르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감성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현실적이라 차갑고, 너무 정교해서 오히려 계산된 감정처럼 느껴지죠.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그런 틈 사이로 스며드는 감정의 여백이 있었습니다. 완성도 높은 구성보다 중요한 건 ‘느낌’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줬어요. 그래서 돌이켜보면, 이 작품은 완벽해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허술하고 투박했기 때문에 마음에 오래 남는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사람 냄새가 났던, 그래서 더 그리운 그런 작품이죠.
3. 수사극, 청춘극, 성장극이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이 드라마는 장르적으로 보면 수사극이 맞습니다. 살인사건, 범죄자, 도주, 추적 등 수사의 기본 틀을 다 갖추고 있죠. 그런데 중요한 건, 사건보다 인물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수사는 이들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였고, 진짜 드라마는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였습니다. 은대구는 어릴 적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 트라우마가 지금의 반항적 태도, 감정 기복, 동료들과의 벽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런데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 단순한 사건 해결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고아라의 ‘어수선’은 그런 은대구를 뚫고 들어가는 인물이고, 차승원은 그의 상처를 다그치면서도 결국 감싸주는 보호자 역할을 하죠. 그 속에서 서로를 믿게 되고,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청춘이라는 시기에서 한 걸음씩 성장해 가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편의 드라마 안에서 어우러졌다는 게 지금 봐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청춘을 묘사하는 방식이 참 따뜻했어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친구, 동료, 선배, 후배 사이에서 겪는 감정의 진폭이 지나치게 극적이지 않아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수사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물 간의 서사가 남아 있었고, 그 여운이 오래갔죠. 누구 하나의 이야기로 끝난 게 아니라, 네 사람의 시선으로 각기 다른 성장과 변화가 그려졌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완벽하지 않아서 더 따뜻하고, 엉성해서 더 기억에 남는 드라마였습니다. 수사, 청춘, 감성 그 사이 어디쯤에서, 2014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품고 있었던 작품.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본다면, 그 감동은 아마 더 짙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